2022년 말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바젤에 MSCHF는 "ATM 리더보드"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이 전시품은 실제로 작동하는 ATM으로, 카드를 넣으면 돈을 출금하거나 잔액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인 ATM과 다른 점은 이 기계에 카드를 넣으면 카드를 넣은 사람의 얼굴 사진을 찍어서 카드의 잔액과 함께 ATM 기계 위에 붙어있는 디지털 스크린에 순위가 표기된다는 것이다. 한동안 랭킹 1위는 아트바젤에 방문한 래퍼 디플로의 카드 잔고 300만 달러 기록이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 비싸보이는 정장과 드레스를 입은 전형적인 마이애미 커플 하나가 잔고 500만 달러로 1위를 갱신했다. 재밌는 것은 이 커플은 잠시 후 다시 ATM에 오더니 950만 달러로 기록을 더 높여 두었다는 것이다.
아트바젤은 돈 많은 사람들이 람보르기니를 타고 롤렉스를 차고 온다. 예술과 돈이 만난다는 곳이니만큼 뒤틀린 자본주의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남들 앞에서 돋보이고 싶은 욕구와 유명인과 발을 걸치고 싶은 욕구, 그리고 사실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웃음 아래에 숨기며 문명인으로서의 고고함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은행 잔고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이 작품 앞에서는 오히려 잔고가 적은 사람들, 특히 잔고가 100달러 이하거나 0인 사람들이 큰 환호를 받았다. 지구에서 가장 부유하고 고상한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자신의 소박함을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아트바젤의 화려함과는 다르게 가장 보통의 예술인은 가난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돈이 많다는 걸 공개적으로 드러낼 정도로 떳떳한지, 그만큼의 명성을 갖춘 사람인지도 생각하게 되며, 하다못해 돈이 많다는 걸 자랑하는 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것도 알 것이다.
500만 달러로 이미 1위에 등극했음에도 통장에 돈을 더 넣어서 950만 달러를 증명한 커플의 머릿속은 어떤 생각일까? '내가 남들을 압도할 정도의 돈을 가졌다는 걸 보여주자'? 이러한 발상은 일반적인 사람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다. 위에서 이야기한 자랑하길 주저하게 만드는 억제장치들이 없다. ATM 리더보드는 바로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작품이다. 무언가 결핍된 부자의 사고방식, 그리고 그 순간을 모두가 함께 지켜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MSCHF가 의도한 것이다. |